[통합돌봄] 트렌드마다 올라타는 복지기관, 그 끝에 남겨지는 후배 사회복지사
우리는 이 장면을 이미 본 적 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됐습니다. 노인복지관을 중심으로 재가장기요양기관으로 지정받으며 요양사업에 뛰어든 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일부 기관장은 직원들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했고, 새로운 사업으로 기관 규모를 키웠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알 겁니다. 이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 영리기관들이 빠르게 요양 영역을 잠식했습니다. 복지관들은 경쟁에서 밀렸고, 요양사업은 서서히 기관의 주류에서 비주류로 밀려났습니다. 그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은 기관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별도 조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은 상처가 깊었습니다.
2011년,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시작됐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 활동지원기관으로 참여했고, 또다시 직원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했습니다. 지금은 이 또한 복지관 고유 업무에서 꽤 분리된 상황입니다.
정부의 거대한 사회보장 기조(이후 트렌드)가 등장할 때 복지기관은 자의든 타의든 올라탔다가, 시장화가 진행되면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해당 업무를 배정받은 동료 복지사들은 그사이 일어난 거센 파도를 정면으로 맞았다는 겁니다. 결정한 사람이 아니라 결정에 따른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때, 마치 한직으로 밀려난 것처럼 취급받은 복지사들은 그 아픔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 굳이 꺼내는 사람이 적을 뿐, 가슴 한쪽에 남은 서러움은 여전히 남아있을 겁니다.
이제 통합돌봄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사회복지관이 또다시 올라타고 있습니다. 입장문(2025.09.30)을 통해 핵심 파트너로 해달라, 인력과 재원을 제공해 달라.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이번엔 상대가 다르다
통합돌봄이 트렌드일 뿐이라면 그나마 낫습니다. 문제는 이번에는 경쟁 상대의 규모와 자본력이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KB금융그룹 계열 KB손해보험은 2016년 금융권 최초로 요양사업 전문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주야간보호센터와 요양시설을 잇달아 개소했고, 2023년에는 KB라이프생명 자회사로 편입되며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신한금융그룹도 2024년 1월 신한라이프케어를 공식 출범하며 뛰어들었습니다. 2024년 11월 분당데이케어센터를 개소를 시작으로 확장 중입니다. 보험업계 전반이 요양 돌봄 영역을 미래 먹거리 시장으로 보고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사회보장사업인 통합돌봄은 그만큼 수가로 보상될 것이니 대기업이 보아도 먹음직한 시장이라고 볼 겁니다.
정부도 이 흐름을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영리기업,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주체를 적극 참여시키는 방향이 이미 정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런 정책이 없다면 대기업이 들어오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돌봄 인력 양성과 관련하여 현장 방문을 할 때, 이미 주식회사를 방문합니다. 이것이 현 상황입니다.
이제는 보조금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서비스를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보조금 기관을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을 겁니다. 사회서비스 방식이 지자체로서는 위탁하는 보조금 방식보다 부담도 적고 책임도 덜 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곳곳에서 수가 방식이 늘고 있고, 이는 보조금 방식으로 운영되는 복지관에도 이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돌봄 요양 영역에 AI와 로봇을 투입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향입니다. 작년과 올해 관련 보도자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방향은 이미 잡혀있고 점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정부는 정책적으로 이미 복지기관만 민간 파트너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 서비스 공급 주체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복지관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유일한 복지 공급자로 대접받는 시대는 이미 정책적으로 끝났습니다.
몰랐다면 준비 부족, 알고도 했다면 근시안
이런 환경 변화를 사회복지관 리더는 알고 있을까요, 모르고 있을까요? 통합돌봄 서비스 시장의 공급 주체가 대형화·다변화되고 있다는 이 흐름 말입니다. 내가 업무를 맡긴 후배 복지사가 앞으로 대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서비스, AI·로봇 등과 온몸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만약 이걸 모르고 통합돌봄 중 복지관이 잘하지도 못할 서비스 사업을 만들어 대응하면 된다고 쉽게 여긴다면 지금 현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겁니다.
반대로 이미 환경 변화를 알면서도 굳이 통합돌봄 중 서비스 사업을 하겠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통합돌봄 중 왜 레드오션인 서비스 사업입니까. 벌써 두 번의 선례에서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복지관이 이런 영역에서는 경쟁력이 없음을 이미 확인했는데 말입니다.
또한 통합돌봄 서비스 사업 영역 즉 요양과 돌봄 영역에도 이미 사회복지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리 목적으로 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아니라 복지관 등에서 일하다가 여전히 복지를 꿈꾸며 일터만 요양 돌봄 영역으로 바꿔 치열하게 해당 영역에서 복지를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 온 복지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복지관마저 뛰어들어 더 각축을 하겠다고 뛰어들어야 하나요.
게다가 이런 결정을 하는 리더 즉 기관장의 임기는 어떠한가요. 계약직의 경우 1년에서 5년, 위탁 기간 기준으로는 통상 5년입니다. 물론 법인과 특수관계인 경우 사실상 임기가 없기도 합니다만 요즘 추세를 보면 기관장의 임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통합돌봄 중 서비스 사업을 추가하는 선택을 하면, 지금 당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압박을 피할 수도 있고, 오히려 예산도 가져오고, 기관 실적도 높아질 겁니다. 단기적으로 임기 중에는 긍정적 성과로까지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해당 영역에 대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서비스, AI·로봇이 적극 투입되어 복지관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특히 통합돌봄 중 서비스 사업을 맡은 그 해당 직원은 어떻게 보호하실 겁니까. 그건 먼 미래 일이니, 논의 밖인가요. 행여나 이런 마음이라면 내 임기 때만 아니면 괜찮다는 근시안과 뭐가 다를까요.
결국 현장 직원들에게 전가된다
통합돌봄 서비스 업무에 투입되는 후배 복지사들은 장기적으로 두 가지 경우를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하나는 복지관의 통합돌봄 서비스 사업이 시장에서 입지를 잃어가는 경우입니다. 그 업무를 담당하던 후배 복지사들이 기관 내에서 외곽화되거나 별도 분리되는 상황이 예전처럼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요양사업 때 그러했듯, 활동지원 때 그러했듯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업이 유지되는 동안 벌어지는 경우입니다. 기존 업무는 줄이기 어렵고 새로운 업무는 계속 얹힙니다. 지금까지 정부와 지자체는 업무량에 비하여 넉넉한 인력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는데, 이번에는 넉넉할 것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꿈 같은 희망입니다. 결국 업무량이 여력을 초과할 겁니다. 게다가 서비스 사업을 처음부터 기관이 제공하는 방식 즉 기관 의존적으로 설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도 줄이기 어렵다고 할 겁니다. 그 과도한 무게를 고스란히 현장 후배 복지사들이 짊어질 겁니다.
어느 경로든 결과는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유능한 인재가 복지 현장에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현장을 기피하는 현상이 이미 심해진 상태입니다. 뽑을 인재가 없다고 현장이 아우성을 칩니다만, 인재를 이렇게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결정이 반복되면, 유능할수록 멀리할 겁니다. 이런 결정 하나하나가 쌓여서 현장의 지속가능성을 지금 이 순간에도 갉아먹고 있습니다.
트렌드는 바뀝니다. 예산은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 매번 남겨지는 건 사람입니다. 이전에 겪었던 두 번의 상처를 끊으려면 이번에는 지난번 패턴을 잘 살펴서 제대로 된 결정을 해야 합니다. 통합돌봄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가운데에서도 어디가 유리하고 어디가 불리한지 정도는 최소한 구분하는 전략적 판단은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 후배 복지사를 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 바로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과 관련된 건 다음 글에서 짚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