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구를 통해 필요를 살피는 사회사업 실천 🎯
욕구는 필요를 충족하는 방법이자 수단입니다.
필요는 욕구를 통해 충족하려는 근본입니다.
필요에 집중하면 더 다양한 대안을 찾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욕구 너머 필요를 파악합니다.
이로써 당사자의 자기선택의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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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내용
[당사자체계 탐색] 욕구를 통해 필요를 살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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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와 필요. 사회복지 기초 개념이지만 물과 갈증 해소의 관계를 통해 다시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필요를 찾는 대화를 지속해가야겠습니다.
꽤 유용하실 겁니다. 특히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라는 걸 잘 응용하면, 많은 사람과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응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응원드려요. 고맙습니다. 😊
욕구와 필요의 정의를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당사자가 표현하는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매몰되다 보면 사례관리 본연의 목적이 전치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례관리는 당사자를 개별화하여 상당 기간 지원하며 다양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인데, 자칫 욕구 충족만을 우선시하다 보면 당사자 쪽 자원보다 기관의 자원을 더 쉽게 활용하게 되기도 합니다.
욕구는 빙산의 일각이고, 당사자의 표면적 욕구 너머에 있는 ‘필요’를 파악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욕구를 듣고 그로써 채우려는 ‘필요’를 살피는 시선이 사회사업을 수월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목적과 수단이 전치되면 사회사업을 통한 유익보다 부작용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인식하고 바르게 실천하는데 애써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주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은 푹 쉬세요. 고맙습니다. 😊
욕구 이면에 그 어떤 필요가 있는지, 늘 들어왔지만 그 과정이 저에겐 늘 어렵게 다가옵니다. 결국은 욕구에만 머물러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관계가 얕아 필요를 이야기 하기 어려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분의 필요를 정확하게 알면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다양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제가 이번 아티크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또 여쭈어야겠습니다.
이것과 별개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보통은 욕구를 needs로, 요구를 wants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강의 하시거나 설명하시는 분들을 많이 뵈어왔습니다. 오늘의 아티클에서는 needs를 필요/ wants를 욕구로 명명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 필요를 통해 다양한 해결방법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아셨고 도움이 되셨다니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그게 핵심이거든요! 핵심을 찰떡같이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가 아는 바로는,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needs / wants에 대응하는 한국 용어가 일관되지 않고 또 합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교수님마다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아서요. 그래서 한국어만 들으면 지금 needs를 설명하는 건지, wants를 설명하는 건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게 합의되지 않는 채 각자 용어를 썼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일 겁니다. 이 부작용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제가 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사회복지 분야 외 다른 분야에서 주로 어떻게 쓰는지를 살폈습니다. 같은 사회응용 분야 중 대중이 널리 접하는 소비자 분야, 경영 분야(마케팅, 경영, 홍보 등) 등을 살폈는데, 이곳에서는 비교적 일관되게 needs를 필요, wants를 욕구로 표현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결국 인접 분야이면서 대중이 좀 더 접하는 경영 분야에서 나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으니, 한국 사회 전체 차원에서 보면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이걸 사용하는 게 향후 학술 용어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라 생각하여 needs=필요, wants=욕구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wants를 ‘요구’로 번역하는 방식은 들었을 때 의미 차이가 선명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욕구/요구는 뉘앙스, 음절, 의미 모두에서 직관적으로 구분이 안 됩니다. 이렇게 유사하게 느껴지면, 결국 설명을 듣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해석을 덧붙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볼 때는 이렇게 하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필요’와 ‘욕구’는 한국어 사용자에게 의미 차이가 훨씬 직관적으로 명료하게 전달되는 장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의미 전달 면에서, 한국 학술 전반에서 일관된 다수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따져서
needs=필요, wants=욕구가 더 선명한 구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일 뿐이라서… 딱 학술적으로 다 이래야 한다, 이게 옳다고 말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
이 글을 읽다 보니, 늘 이것 저것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하고 신청하면 잘 나오지 않거나 나오고 싶지 않을 때 나오지 않는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프로그램을 하고자 할 때는 학교에서 말 한마디 없던 친구가 신청해달라고 계속해서 저에게 요청합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신청하도록 독려하였지만 이후에는 제가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향으로 갔지만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보며 이 친구에게 프로그램 신청이라는 욕구 이면에 어떤 필요가 숨어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아빠와 남동생 둘과 함께 생활하며 바쁜 아빠 틈에 가족 간의 대화가 거의 없는 집이었습니다. 경계선 지능을 의심할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하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자리를 피할 정도로 사회성도 많이 낮은 상황입니다. 반에서 친한 친구는 없어서 쉬는 시간마다 저를 찾아옵니다.
이런 상황들을 살펴보니 이 친구의 이면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학교생활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 들이 어쩌면 프로그램 신청을 원하는 욕구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정리하면서 남은 학기동안 이 친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지지해주고,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해 응원해주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해나가야될 부분이겠다 생각해봅니다.
말씀처럼 그 아동이 프로그램이라는 접점을 통해 어쩌면 선생님과 또는 다른 이들과 관계 맺고 싶고, 어쩌면 자신도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 걸까 싶기도 하네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혹 이게 아니라 하더라도, 남은 학기 동안 아동에게 지지와 응원을 전해질테고, 혹 이게 맞다면 말로 풀지 못했던 것까지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른을 만나는 지지적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 아이와 같이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셔도 좋겠습니다.
아티클을 읽으며 아이의 욕구로부터 필요가 무엇인지 곰곰히 살피시는 선생님, 선생님을 만난 그 아이는 참 좋은 어른을 가졌네요. 고맙습니다. 😊
동 주민센터에 있다 보면 많은 분들이 “돈이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수술비, 병원비, 이사비, 사채 문제, 통장 압류, 출소 후 취업 실패 등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요청은 “돈을 달라”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사실 따져 보면 ‘돈’은 목적이라기보다 수단, 즉 욕구(want)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돈을 통해 해결하려는 진짜 필요(need)는 치료·주거 안정·생계 기반·다시 일어설 기회 같은 것일 텐데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돈”보다 “돈을 받는 상태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기초수급 생계급여 상태를 안전지대로 여기고 고착되려는 모습도 현장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활’이라는 단어조차 공허하게 느껴지고, 노동의 가치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특히 이런 고민이 듭니다. 공공이 생활이 위태로운 분들에게 돈을 드리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삶이 바뀔 수 있을까요? 돈이 떨어지면 다시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돈 이상의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무엇”이란 무엇이고, 실제로 삶의 본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저 자신은 돈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전달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도 들게 됩니다.
게다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는 무게는 누구에게나 너무 큽니다. 압박감도 상당합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주민들이 절박하게 돈을 외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은 비단 수급자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임대주택을 신청하려 해도 서울 같은 지역에서는 극단적으로 높아진 집값 때문에 제대로 된 주거지를 마련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이 앞서고, 자본이 노동의 가치를 앞질러버린 이 시대에 최저생계비만으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분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그렇다 보니 공공영역에서 사회복지공무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더 고민하게 됩니다. 단순히 현금급여 지원을 넘어, 그 이상의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기반을 회복하고, 미래를 꾸려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저는 요즘 이 질문에 계속 머무릅니다. 결국 다시 ‘돈’의 문제로 돌아가지만, 진짜 핵심은 돈을 넘어서는 삶의 회복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참 어렵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수단이어야 하는데, 자칫 의미 없는 목적 자체가 되어버리면 사람다움을 잃게 만드는 무서운 것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주로 돈과 관련된 물질적 수단으로 돕는데 무게중심을 두는 ‘사회(복지)정책에 따른 서비스’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위험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이라도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 분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다고 앞에서 말한 위협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에 비하여 원래 사회사업social work은 관계에 무게중심을 두는 분야라고 봅니다. 원래 이러했는데, 사회복지정책과 계속 연동되면서, 사회사업마저 점점 물질적 지원에 무게중심을 두고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사업마저 돈이라는 것의 비중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책 서비스가 가진 사람다움을 잃게 하는 위협이 늘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사회사업의 원래 정체성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더 커지는 위협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 초점을 두며 사람다움, 사회다움을 놓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제가 활동하며 현장이 혁신하기를 바라는 지점도 정체성을 바르게 세우고 사람다움, 사회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현장도 달려가기를 바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게 점점 강화되면, 사업비는 거의 최소한으로 해도 되는 수준까지 꿈꾸기는 합니다.
‘삶을 회복하는 일’로서 사회사업, ‘사회다움을 회복하는 일’로서 사회사업. 그로써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바른 삶, 바른 사회를 만드는 사회사업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선생님 댓글이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
오늘의 아티클은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욕구가 중요하다고 하니 정말 표현하는 그 욕구에 꽂혀서 그걸 해결해주려고 노력하고
그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기위해 잘 묻고 의논하고는 것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티클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부분을 딱 정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 당사자가 표현한 욕구에만 집중하기 쉬운데, 그 이면의 진짜 ‘필요’를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려면 말씀처럼 잘 묻고, 함께 의논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겠습니다. 합니다. 잘 발견해 주시고 잘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