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 말고 관계가 있어야 살만해집니다 🎯
서비스가 와도 고립은 해결 안 됩니다.
살만하려면 목적 없이 만날 사람이 필요하죠.
통합돌봄 절차엔 이 부분이 비어있습니다.
비공식 관계망 살리기, 그게 사회사업입니다.
기관 구조가 이걸 뒷받침해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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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내용
[통합돌봄] 서비스가 연결되는 그때부터 사회사업으로 관계망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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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 서비스가 연결되는 그때부터 사회사업으로 관계망 살리기](https://edu.welfare.pe.kr/wp-content/uploads/2026/03/20260320_qlswkfl.png)

‘복지’라는 이름으로,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으로 굳이 부르지 않아도 그분들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되도록 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있는 관계 속에서, 하시던 일로 돕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갑니다.
주민 분이 어제 했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 동네가 좋아요. 문만 열고 나가면 아는 사람이니까, 얼마나 좋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저 앞에 아시는 분이 마침 걸어가신다며, 만난 김에 이야기 나눠야겠다고 서둘러 가셨습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람은 관계로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합돌봄도 통합돌봄의 이름을 벗고 일상에서 인사 나누는 관계, 안부 묻는 관계, 먹을것 조금씩 나누는 이웃의 이름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아야겠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아는 사람이니까 좋다”는 그 한마디가, 아티클에서 제가 말한 ‘살만한 삶’의 가장 정확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서비스 몇 개가 집에 오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문밖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그리고 그분이 마침 지나가는 사람 보고 서둘러 달려가셨다는 장면이 바로 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지라고 말하는 모습이라 봅니다. 그게 바로 관계망이 살아 있는 상태거든요.
선생님이 현장에서 보시는 그 장면들이, 사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결과물의 완성된 모습이라 봅니다. 이웃의 이름으로 불리도록 돕는 방향, 이것이야말로 빈자리를 채우는 우리의 실천이 되리라 믿습니다.
주민들끼리 이미 친해진 관계를 발견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건강이 며칠 사이에 악화되어 병원에 가야 하는 주민분이 계셨습니다. 가족들도 아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 주민이 찾아오셔서, 병원에 가게 해달라는 설득을 같이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정 방문을 했습니다. 저희의 말을 듣기 보다 같이 동행한 이웃 주민의 말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조금 거들뿐이였어요. 상담을 하면서 다른 이웃 주민 1명이 더 오시고, 다른 한 분은 식사를 직접 차려서 들고 오는 모습을 봤습니다.기관과 관계는 없었지만, 주변 관계망이 촘촘하게 있는걸 보면서 ‘아 이런 연결을 사회복지기관이 만들어야 하는건가?’ 싶었습니다. 주민 조직 모임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주민 조직 모임에서 무조건 이익이 있어야 하는 기관 방향에서 어떻게 교집합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정 방문에서 직접 보신 그 장면이 중요한 지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웃 관계망이 이미 촘촘히 있었고, 선생님은 그걸 알아보고 거들기만 하셨지요. 사회사업가의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관계를 발견하고, 그 관계가 작동하고 생동하도록 옆에서 거드는 것.
사실 어제 일은 큰 성과인데 말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비공식 관계망이 살아 움직였고, 기관이 그걸 알아보고 주선하고 생동하도록 도운 건데… 이걸 우리 성과로 스스로 보고 또 이걸 잘 드러내는 기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느슨한 관계망이 분명 빛을 발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통합돌봄의 단계를 지금보다 더 촘촘하게 짜고 세분화한다고 해도, ‘살만하게 사는 것’에 필요한 소속감까지 채워 주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문요양 3회, 방문간호 4회처럼 서비스 횟수는 기록될 수 있지만, 그 방문이 끝난 뒤 당사자에게 어떤 감정이 남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비스가 들어오는 것과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몇 번의 만남만으로 당사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충분히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가 연결되는 그 순간부터 당사자 곁에 어떤 사람과 공간이 있는지 살피고, 끊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통합돌봄은 서비스를 촘촘히 연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다시 소속감을 느끼고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관계망을 함께 발견하고 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가야할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배움의 기쁨과 동시에 고민을 갖게해주시는 아티클 감사합니다
서비스 횟수는 기록되는데 그 방문이 끝난 뒤 당사자에게 어떤 감정이 남는가!
맞아요. 그 부분이 핵심입니다. 그 부분이 놓쳐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치로 성과로 기록되는 것과 실제 그 삶 속에 남겨지는 분이 느껴지는 것이 다르니까요.
소속감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아티클에 나온 카페 어르신들이 딱 그 장면입니다.
서비스받는 게 아니라 소속된 것, 바로 거기에서 비로소 지금 집에서 살만하다고 느끼는 거거든요.
서비스를 아무리 촘촘히 짜도 소속감은 지금 진행되는 방식으로는 잘 채워지지 않아 빈 자리로 남을 겁니다.
고민이 생겼다고 하셨는데, 그 고민이 바로 사회사업가만이 주되게 할 수 있는 질문이겠어요.
그 자리를 아무도 채우지 않으면 비어 있는 거니까요.
고민이 곧 궁리가 되고 궁리가 구상이 되고 곧 실천으로 이어질 거예요.
함께 고민하고 궁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우리가 현장에서 왜 그토록 수고로운 길을 고집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확신을 얻습니다. 2026년 통합돌봄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수많은 서비스가 집으로 연계되고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돌봄은 채워져도 살만함의 빈자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아름드리꿈터는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나갈 때, 키오스크만 덩그러니 놓인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점에는 가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서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영수씨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물어봐 줄 수 있는 작은 동네 상점을 찾아 나섭니다. 센터가 아닌 당사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요!
대형 체인점의 세련된 서비스가 주는 유혹이 있지만 동네 카페 사장님과의 사소한 인사는 당사자를 마을의 이웃으로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수가나 행정 절차, 대기업의 매뉴얼로는 결코 표준화할 수 없는 이 ‘목적 없는 환대와 관계의 빈자리’야말로 사회사업가인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전문성이자 영토임을 확신합니다. 귀한 통찰이 담긴 글 늘 감사합니다 ^^
‘영수씨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한 문장이 바로 통합돌봄 서비스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회사업만의 역할, 기여를 잘 드러내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렇네요. 키오스크는 효율적이지만 그 표준화 안에 ‘영수씨’의 삶의 자리, 삶의 생태는 없겠지요. 영수씨를 영수씨로 불러주는 관계, 공간이 영수씨 사시는 동네에 한 군데라도 있어야, 비로소 마을 안에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서비스는 집으로 들어오지만, 살만함은 결국 집 밖 동네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귀한 실천, 실례 사례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목적 없이 만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통합돌봄 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아이들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센터가 오지 않는 다는 말을 기존 책에서도 이야기를 했었지요.
관계를 돕고 함께하는 일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긴하나, 이 일의 특성상 관계를 직접적으로 건드릴수록 관계는 더욱 헤쳐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를 돕는 다는 일로서 누군가는 물적은 아니더라도 사회적 역할이라던지, 혹은 정보 접근성의 차이라던지, 아니면 공적의 차이든 어떤 일이든 보상과 지지 격려를 받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또 다른 시기 질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민의 관계를 두텁게하고 주민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일은 실무자의 실천 행동과 철학에 녹아들되, 일상에서는 이를 너무 작위적으로 할 경우 주민도 힘들고, 실무자도 인간다운 관계로 다가가지 못할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실무자들은 이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개인적인 삶에서 얼마만큼 활동하고 있는지, 또 그 활동을 본인들에게 제안 받으면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봐야합니다.
‘쟤네는 어쩌피 일 때문에 우리 만나잔어?’
일로서 만나는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신뢰를 쌓기도 어렵습니다. 실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얻었거나, 얻지못한다 생각할 경우 관계는 금방 끈납니다.
주민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넘어서, 실무자도 주민 vs 사회복지사로서 만남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인격체로서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야합니다. 그안에서 함께 하는 일을 편안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주민의 삶을 프로그램에 가두지 않는 일은, 주민과 만남의 자연스러움을 인간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시작하며, 주민과 함께하는 일상을 프로그램에 해석해서 작성해내는 일입니다.
와,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지역아동센터에서 깊게 경험하시며 길어 올리신 이야기라 그런지 확실히 그 무게감이 다르네요.
관계를 직접 건드릴수록 오히려 헤쳐진다는 말씀, 알묘조장이 떠오릅니다. 어설프게 건드려서 오히려 다 망쳐버릴 수 있는, 소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위험함이겠지요.
관계를 ‘과업’으로 설정하는 순간 일이 되고, 일로 만나는 관계는 말씀처럼 실리가 오가다 실리가 없어지면 금세 끊어지겠지요. 그래서 사회사업가의 자리는 관계를 직접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아티클 속 카페 주인처럼 사람들이 목적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조성하되, 당사자와 이웃 관계자가 서로 관계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을 댈수록 헤쳐지니, 손은 떼되 판을 벌리는? 그런 역할이겠습니다.
작위적인 작업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말 그대로 자연의 뜻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도록 되어야 할까 할 때, 답은 명확할 겁니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마지막으로 짚어주신 ‘주민과의 일상을 프로그램의 언어로 옮겨 적는다’는 접근이 참 좋습니다. 프로그램에 삶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삶을 존중하고 그 일상을 따라 사실 수 있도록 우리 프로그램을 재해석하기. 맞습니다. 이 순서만 지켜도 현장에 삶이 넘칠 겁니다. 고맙습니다.
일상에서 그런 의미를 짚어낼 수 있는 역량과 관점을 갖출 수 있도록 반복되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럴 경우 소박한 일에도 짚어낼 의미가 충분히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당장 제가 처한 기관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엇을 만들어서, 돌봄대상자들에게 안부겸 가져다드리는 모임이 있는데, 이모임이 좀더 역할을 부여받아 고정적으로 활동하면 연결지점이 생기겠단 생각하나, 또하나는 이전에 재능있는 주민을 발굴해서 예를들면 수세미 만들 주민 모여라! 준비물은 나눠먹을 간식 1가지 이런식으로 1회성으로 모임을 실시하고, 그 모임에서 마음이 맞는 주민은 복지관에 오셔서 다음 수세미를 만드셔도되고, 서로 인사나누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 모임처럼 단발성이라도 작은 동네(구역) 단위로 모임을 해서 얼굴을 아시게끔 해도 좋겠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늘 출근길에 보니 통합돌봄에 관련된 현수막이 붙어있더라구요. 이제 집에서~라는 문구로 시작하더라구요. 집에 계시면 다 찾아가는 개념처럼 홍보가 되고있는데, 까페에 찾아오셨던 어르신이 까페사장님과 인사나누는 사이였던 것 처럼 동네에서 서로 다 아는 사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돕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싶습니다.
이미 현장에서 하고 계신 실천들이 딱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네요. 수세미 만들기 모임처럼 가벼운 핑계로 얼굴을 트게 돕는 것, 그게 관계망의 씨앗이라 보거든요. 서비스는 과업 중심이라 들어갔다 나오지만, 그렇게 한번 얼굴 튼 사이는 길에서 마주쳐도 안부를 묻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안부가 쌓이면 아티클에 나온 카페 어르신들처럼 되는 거고요.
동네 단위로 작게 모여 얼굴 아는 사이가 되도록 돕는다는 게 좋은 게, 그게 결국 규모의 문제를 우회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엮으려면 엄두가 안 나지만, 작은 생활권에서 서너 명이 서로 아는 사이가 되면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돌봄이 될테니까요. 현수막에 쓰인 ‘집에서’가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그 집 밖에 아는 얼굴이 있어야 할 겁니다.
얼마전 지인과 통합돌봄관련 아티클 학습하는 이야기를 나누던중, 지인이 그러시더라구요. 정작 집에서 있게 하는 이 정책이 당사자는 좋을까? 그의 가족들은 좋을까? 결코 집에는 있지만 고립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설이 더 좋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돌봄정책의 무게 비중보다는 그 반향적인 부분의 정책 건강예방, 커뮤니티 활성화 등에 대한 부분의 중요성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닏.
지인분이 날카롭게 이면을 파악하셨다고 봅니다. 집에 있는데 오가는 사람이 없으면, 그건 집이 아니겠지요. 서비스가 아무리 촘촘해도 과업 수행하고 돌아가는 관계라면, 어르신 입장에서는 사람이 왔다 간 건데 외로움은 그대로인 셈입니다. 말씀하신 건강예방이나 커뮤니티 활성화가 결국 그 빈자리를 메우는 쪽이고, 돌봄의 무게중심이 서비스에서 관계까지 옮겨가야 비로소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살만한’ 게 되리라 봅니다.
통합돌봄 관련 아티클을 읽으며 잠시 멈추어 생각해 봅니다.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복지관이라면 관계를 살려 어르신들이 사는 곳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의 서비스 수준을 따라잡을 방법을 논의하는 것보다, 이것이 훨씬 현실적이며 복지관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일하는 시도에서도 이미 복지관이 ‘통합돌봄’을 하겠다며 공모사업을 신청하고 사업비를 교부받아 운영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사업비 또한 보조금이기에 더욱 신중하고 이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모사업 계획서를 보면 늘 거창합니다. 이웃 간의 관계를 살리는 성과목표를 세우고, 관계망을 살리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사업 기간과 성과지표는 이를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통합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또 하나의 ‘사업’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초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사가 일정 부분 계획된 범위 안에서 안전한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사자의 주체성과 관계를 살려 생태체계를 두텁게 하기보다, 사회복지사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맞추어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느낍니다.
프로그램은 이웃 간 관계를 만들어 가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까 우려도 됩니다. ‘프로그램을 잘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살아나는 것’이 복지관이 맡은 통합돌봄의 핵심역할인데 말이지요.
보조금을 사용하는 기관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통합돌봄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 존재하는 관계를 발견하고 연결하며, 어르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급이 없기에 오히려 이러한 고민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직이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소장님의 아티클을 읽으며 느낀 생각을 덧붙여 조심스럽게 댓글을 남깁니다. 사회사업에 의미 있는 성찰 지점을 꾸준히 짚어 주시는 소장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통합돌봄은 거창한 모델이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 존재하는 관계를 발견하고 연결하여 생동시키고, 당사자가 살아가는 그 삶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을 잘 돌리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관계가 살아나도록 돕는 것’이 복지관의 핵심 역할일 겁니다. 이를 위해 존재하고 만든 곳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이 목적을 잘 달성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만든 도구일 뿐인 성과지표와 사업 기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단이자 도구가 목적을 휘두르는 목적과 수단의 전치 현상이 나타나고, 그러면 중요한 관계 형성은 소홀해지고, 프로그램 운영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목적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냐 아니냐에 따라 사회사업 정체성을 갖느냐 아니냐가 좌우된다고 봅니다.
직급이 없어 오히려 자유롭게 고민하실 수 있지만 이를 글로 작성하여 정리하시는 건 선생님께서 깊이 있는 분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시는 선생님의 태도가 조직 그리고 복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믿습니다. 함께 고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매우 공감됩니다. 프로그램은 하나의 매개나 수단인데, 산출적인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거창한 통합돌봄 모델이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민간의 관계가 생동감으로 숨을 쉬는 곳, 여기에서는 내가 편안히 만나고 하소연 하더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 갈 곳이 있고, 속할 곳이 있고, 터전이 있는 곳~~~ 그러한 삶을 지향해 봅니다.
산출 실적에 매몰되면 프로그램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사람은 서비스의 대상으로만 남고, 관계는 끼어들 틈이 없어집니다.
선생님께서 그리시는 그림이 정확히 아티클에서 말한 그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이라 봅니다. 편안히 만나고,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그런 곳.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동네 카페에서 시끄럽게 수다 떠는 어르신들 사이에 이미 있는 거거든요. 작은 마을에서부터 그걸 의도적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건, 사회사업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방향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