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돌봄] 안 할 수 없다면, 오히려 능동적으로 분투해야

약자가 아닌 적 없는데 왜 전략이 안 보일까

한 가지 현실을 짚고 가겠습니다. 사회복지관은 위탁 구조입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통합돌봄에 큰 기조를 걸고 속력을 내는 상황에서, 복지관이 무작정 “우리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재위탁이 걸려 있고, 지자체와의 관계가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통합돌봄에 기여하는 것 자체는 복지관의 결정권 밖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회보장의 대전환으로 통합돌봄을 세우고 여기로 모든 역량을 집중할 거라는 걸 여태 몰랐습니까? 정부와 지자체가 통합돌봄을 추진하면서 복지관에 어떤 형태로든 압박할 줄 과연 몰랐습니까?

평소에 복지관은 약자라고 스스로 그렇게 늘상 이야기해 왔으면서, 왜 통합돌봄 출범 7년이 넘도록 어떠한 전략도 세운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뒤늦게 통합돌봄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하면서 하필 레드오션이 뻔한 서비스 사업으로 뛰어드는 걸까요. 그 자리에서 이미 고군분투하는 같은 뜻을 가진 동료 사회복지사와 경쟁하는 결과가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지적하면 약자라서 한계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많은 현실을 이해해 달라고 합니다. 약자라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약자라서 전략을 준비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약자라서 전략대로 안 될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약자라서 의아한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 비판하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능동적이면서 합리적 전략이 잘 안 보인다는 겁니다. 이래저래 전략은 잘 드러나지 않고, 그냥 수동적으로 트렌드에 올라타는 것으로만 보인다는 겁니다.

정체성 부재가 낳는 현상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체성의 부재입니다.

정체성이란 “우리 사회복지관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이 답이 분명하면, 새로운 사업 앞에서도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업이 과연 우리 정체성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우리 정체성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사업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역할로 기여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거치며 참여 방식과 범위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게 현실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둘째 치고, 반드시 이 단계를 거칠 거라는 겁니다. 정체성이 있다면 말입니다.

반면 정체성이 없으면, 이 단계를 거치지 못합니다. 그저 조건을 따집니다. “예산이 나오는가?”, “다른 기관도 하는가?”, “지자체가 압박하는가?”, “안 하면 불이익이 있는가”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 이건 주도가 아니라 수동입니다. 설계가 아니라 수용입니다. 이러면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자의든 타의든 끌려서든 끌어서든 올라타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정체성이란 비전 선언문이나 슬로건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닙니다. 실제 사업 판단과 자원 배분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비로소 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불가항력이라 거절할 수 없다 해도, 그 상황 속에서도 무엇이 더 정체성에 맞는지 구별하려고 몸부림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체성입니다. 말 그대로 분투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Maxim Tolchinskiy

사업은 쌓이고, 직원은 지쳐간다

정체성에 따른 분투 없이 결과적으로 올라타는 기관이 먼저 치르는 대가는 바로 자원 낭비입니다. 사람, 시간, 예산은 유한합니다. 트렌드, 시류가 일어날 때마다 새 사업을 얹으면 그 유한한 자원이 분산됩니다. 집중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리해야 할 것도 정리하지 못하는 상태가 악화됩니다.

게다가 복지관이 무언가를 직접 제공하는 사업 방식은 일단 한번 만들면 나중에는 없애기 어렵습니다. 당사자가 있고, 관계가 있고, 이미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확인해 봅시다. 통합돌봄 중 복지관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한다고 하면, 이건 몇 년 하면 종료할 수 있겠습니까. 10년 하면 의존에서 벗어날까요 아니면 100년 하면 벗어날까요. 복지관이 직접 제공하는 사업 방식은 애초부터 종결될 수 없는 구조를 확정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러면 사업이 추가되기만 하니 직원의 과부하 또한 확정되는 겁니다.

직원들은 줄지 않는 기존 업무와 계속 늘어나는 새 업무 사이에 눌려 소진됩니다. 번아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닙니다. 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결과가 만들어낸 겁니다.

약자일수록 전략이 필요하다

위탁 구조라는 현실에 있으니 복지관은 당연히 약자입니다. 그런데 약자일수록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략에 더 몰두해야 합니다. 사실 강자는 전략이 필요 없습니다. 권력으로 누르면 되니까요. 약자의 무기가 바로 전략입니다. 그런데 약자가 전략에 몰두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나쁜 방식입니다. 결국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게 됩니다.

통합돌봄은 갑자기 나타난 이슈가 아닙니다. 2018년부터 7년 넘게 이어져 온 정책 흐름입니다. 관련 법이 제정된 것도 2024년 3월이고, 시행까지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습니다. 전략을 세울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길게 보면 7년, 짧게 봐도 2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이런 질문을 던졌어야 합니다. 앞으로 사회보장의 커다란 기조가 될 통합돌봄 속에서 사회복지관은 어떤 독점성, 차별성, 고유성을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떤 점을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가. 특히 대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서비스, AI·로봇에 비하여 말입니다. 그 답을 먼저 찾은 후 통합돌봄의 성공을 절실히 원하는 정부, 지자체에 제안해야 바른 순서입니다. 이를 궁리할 기간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복지관협회가 회원 기관에 보낸 공문을 보면, 사회복지관 추진 사항으로 통합지원 업무 위탁 수행, 통합지원 서비스 제공 등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협회 스스로 복지관을 통합돌봄 중 서비스 제공 주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공문에서는 정체성에 기반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흘러가면, 결국 1편에서 우려한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과연 7년간 치열하게 고민하여 도출한 전략일까요.

약자라서 전략을 못 세우는 게 아닙니다. 약자니까 더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다 결정되었으니 끝났다, 책임 소재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실 비판도 할 이유도 없습니다. 애쓴다고 바뀌는 게 없는데 뭐 하러 헛심을 쓰겠습니까.

저는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통합돌봄법이 시행되는 지금, 시행규칙에는 들어갔지만 구체적인 행위까지 규정되지 않은 지금, 지자체도 통합돌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지금, 오히려 현장에 나도 모르겠다고 물어보는 지금, 아직 덜 체계화되어 뭔가를 그려 넣을 수 있는 여백이 그래도 남아있는 지금이야말로 복지관의 정체성을 지키며 그에 맞는 역할로 적극 제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관이 통합돌봄 안에서 독점적, 차별적, 고유하게 확보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를 3편에서 구체적으로 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