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돌봄] 사업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존재로 기여해야 한다

통합돌봄이 놓치고 있는 절반

통합돌봄은 두 가지 목적을 제시합니다. 공식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퇴원하거나 시설에서 나온 사람이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를 집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가 집으로 들어가서 생존에 위협이 없도록 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수 요소, 즉 지역사회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존만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연명입니다. 집에서 서비스받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더 나은 삶, 추구하는 삶일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사람다운 삶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를 정부도 지자체도 붙잡는 겁니다. 초기 이름도 지역사회 통합돌봄입니다. 영어도 커뮤니티 케어입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부와 지자체는 첫 번째 목적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서비스 제공 체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우므로 온갖 주체를 동원하는 상황입니다. 가능하다면 복지관도 여기에 끌어들이려고 할 겁니다. 당장 급하니까요.

반면 두 번째 목적인 지역사회와 어울려 사는 삶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뚜렷한 대책이 없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영역을 실천할 주체가 보이지 않을 겁니다. 대기업, AI·로봇 등이 애초부터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보여도 사회적협동조합 정도가 보일 겁니다. 하지만 보상 체계가 어려울 겁니다. 이웃과 어울려 살도록 돕는 걸 어떻게 행위별로 측정하여 수가로 환산하여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복지관협회가 최근 회원 기관에 보낸 공문에는 사회복지관 추진 사항으로 통합지원 업무 위탁 수행, 통합지원 서비스 제공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목적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지금 복지관이 달려가겠다는 방향이 정확히 첫 번째, 서비스 제공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 방향에는 이미 대형 금융·보험 기관 등이 진출하는 초경쟁 영역입니다. 하필 달려가는 곳이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싸움터로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마을지향복지관이 이미 해법을 보여줬다

복지기관에는 오래된 습관이 있습니다. 어떤 트렌드든 개별 사업으로 치환해서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마을지향복지관이 화두가 됐을 때, 초기에 일부 기관들도 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지역조직팀 또는 지역복지팀에서 마을 관련 프로젝트 사업을 새로 만드는 방식 말이지요. 마을지향이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실제로는 기존 사업 위에 프로젝트 사업을 얹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인식한 기관들이 먼저 관점을 바꿨습니다. 마을지향은 사업이 아니라 기관 전체의 정체성 즉 방향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정 팀의 프로젝트나 사업이 아니라, 복지관이 지역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마을지향이라고 재정립한 겁니다. 전략의 수준을 사업 수준에서 정체성 수준으로 끌어올린 겁니다.

그 후 동중심 등과 결합되면서 그 판단의 결과가 지금 서울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지역밀착형복지관이라는 형태로, 이미 지자체로부터 그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업으로 수용했을 때는 트렌드와 함께 사라질 수 있었지만, 정체성으로 내재화했을 때는 오히려 지자체가 그 존재 이유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진 겁니다.

이것이 통합돌봄 앞에서 복지관이 취해야 할 전략의 선례입니다. 내부에 이미 해법의 실마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통합돌봄 앞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통합돌봄 관련 사업을 몇 개 추가할 것인가, 아니면 복지관의 정체성과 실천이 통합돌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상위 개념으로 정립하고 정부와 지자체에 증명하며 설득할 것인가.

마을지향의 경험은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미 보여줬습니다.

©️Bournes senruoB

정체성을 근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

그럼 복지관의 정체성과 실천이 통합돌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어떤 논리로 정립하고 설명해야 할까요?

사회복지관의 본래 역할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복지관은 지역사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고, 당사자가 지역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돕는 실천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이 핵심 정체성이 될 겁니다. 이것이 통합돌봄의 두 번째 목적, 즉 지역사회와 어울려 사는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복지관이 지금 하고 있는 실천 자체가 통합돌봄이 손도 못 대고 있는 바로 그 빈자리입니다. 그 빈자리를 사회복지관인 우리가 잘 채울 수 있고 또 채워왔음을 강조해야 합니다. 복지관은 실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복지관은 지금까지 이 역할을 해 왔습니다. 왜 이걸 못 보는 걸까요.

한국사회복지관협회의 입장문을 보면, 일상생활돌봄과 정서지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복지관이 그 서비스를 맡아서 제공하겠다는 방식입니다. 여전히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관점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렇게 서비스로 프레임이 잡히면 이건 언제든 다른 사회서비스로 쉽게 대체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기관 의존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일은 계속 더 늘어나기만 할 겁니다. 왜 스스로 지금까지 잘 해온 실천을 하찮게 여기는 듯 행동하고 결정하는 겁니까. 지역사회와 어울려 살도록 돕는 실천. 이것만큼 공공성 있는 역할이 어디에 있습니까. 왜 자기 안에 있는 보석을 못 보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차별성이 생기나요? 복지관은 일상돌봄과 정서지원이라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당사자와 지역사회 주민들이 관계 맺으며 그들 간에 돌봄과 정서지원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차별성이 생깁니다. 만약 정부와 지자체의 압박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면 서비스를 하더라도 임시로 최소한으로 후순위로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것을 복지관 스스로 언어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통합돌봄 관련 서비스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통합돌봄의 두 번째 목적을 실현하는 기반”이라는 논리입니다. 여러 공급 주체 중 하나라서 언제든 더 값싼 주체로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복지관의 정체성과 실천 자체가 통합돌봄 전체에서 두 번째 목적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독점적·차별적·고유한 역할을 갖는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이 역할은 결코 수가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보조금으로 운영하는 복지관 만이 이 공공성을 안정적으로 실천할 수 있노라고 정부와 지자체에 먼저 능동적으로 제안하여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합니다. 어차피 끌려가야 한다면 오히려 먼저 치고 나가야 약자로서 협상력을 그나마 확보할 수 있습니다.

통합돌봄의 고립을 막는 보루로 복지관이 제 역할을 해야

이 이야기를 지금 강하게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지역사회 통합돌봄 및 보호’를 명시한 지금, 복지관마저 서비스 사업으로 달려가면, 나중에는 통합돌봄 자체가 심각한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비스는 받지만, 지역사회와 단절된 채 집에 고립되는 당사자가 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 요양보호사가 오고, 의료진이 오고, 돌봄 서비스가 들어오지만, 지역사회로 나가지 않고 관계도 없다면 어떻습니까. 과연 그 모습이 통합돌봄이 약속한 사람다운 삶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겁니다. 서비스는 충족됐지만 고립은 심화됐다는 비판이 거세지면, 통합돌봄 전체의 명분이 흔들립니다. 집에서 고립될 바에 재입원, 재입소가 더 낫다는 흐름이 커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흘러가면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 근본적인 위협입니다.

이 문제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대형 금융·보험 기관 등은 서비스를 수가 받고 팔 수 있지만, 사람과 지역사회를 잇는 관계를 팔 수는 없습니다. 영리기관이 감당할 수도 없고, 넘겨받을 수도 없는 영역입니다. 수가 형태면 더더욱 하기 어려울 겁니다. 어떻게 수가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어도 안 뛰어들 겁니다. 바로 여기에 복지관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보조금 기반 복지기관만이 할 수 있는 공공성입니다. 이렇게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유리한 땅이 있는데, 그곳을 놔두고 이기기 어려운 죽을지도 모르는 싸움터로 달려가니 전략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통합돌봄이 고립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일에 복지관이 나서야 합니다. 사회복지관이 잘할 수 있습니다. 마을지향복지관이 사업이 아닌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했을 때 지자체가 그 공공성을 인정했듯, 통합돌봄에서도 복지관이 자신의 역할을 독점적, 차별적, 고유하게 정의할 때 존재감이 생길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보조금을 받는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음을 뾰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위탁이라는 약자의 조건 속에서 복지관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