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사업] 어려운 주민·느슨한 관계망: 주민이 결정하고 준비하시도록 거들기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관계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모임 때 결정할 것들이 생깁니다. 무엇을 할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무엇을 챙길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결정하고 준비하는 일은 주민끼리 서로 소통하는 기회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서로 묻고, 날짜를 정하고, 누가 무엇을 가져올지 상의합니다. 모임 후라도 변동이 생기면 그렇게 주민끼리 연락하고 의논하는 동안 관계가 생깁니다.
반대로 사회사업가가 다 결정하고 준비하면 어떨까요? 주민은 모임 날 그저 오기만 하면 됩니다. 편해 보이지만 소통과 관계는 사회사업가와 주민 한 분 한 분 사이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주민끼리 소통하고 연락할 기회는 생기지 않는 거죠. 그러면 그분들의 모임이라 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사회사업가는 주민이 결정하고 준비하시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중장년 모임을 도운 사회사업가는 주민들이 활동 거리를 직접 결정하고 실행하시기를 바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생길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또 다른 어떤 복지관에서는 한 사회사업가가 중년 남성 모임을 도왔습니다. 이 사회사업가는 사회사업가가 다 해 놓거나 해 드리는 모양새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임을 도왔습니다.
무엇을 할지 돕는 순서와 방법
모임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는 주민이 먼저 활동 거리를 제안하시도록 여쭙고 듣습니다. 주민 한 분이 하고 싶은 것을 말씀하시면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여쭙습니다. 그렇게 각자 활동 거리를 꺼내시도록 돕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선택지가 나오면, 최종적으로 주민이 결정하시게 사회사업가가 돕습니다.
이때 유용한 건 활동 거리 후보를 꺼내는 시간과 그중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시간을 분리하는 겁니다. 이걸 분리하지 않고 활동 거리 하나가 나왔을 때 바로 그거 좋겠다고 결정하면,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활동 거리를 제안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일단 활동 거리를 모을 때는 다양하게 하고 싶은 걸 다 꺼내시는 시간으로만 하고, 활동 거리를 다 꺼냈다고 여겨지면 그때 활동 거리를 결정하시도록 돕습니다. 이렇게 제안 시간과 결정 시간을 분리하면 훨씬 더 풍성한 활동 거리 중에서 모두 함께할 만한 활동 거리를 정하기 쉬울 겁니다.
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으실 때
그런데 무엇을 해 보고 싶으신지 여쭈어도 주민이 답을 잘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래 혼자 지내신 분들이 모이면 더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기회가 없거나 뭘 해 본 경험이 적어 안 떠오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도 사회사업가가 선뜻 나서서 대신 결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활동 거리를 찾기 어려워하시면 사회사업가가 활동 거리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가능한 한 주민이 의견을 꺼낼 수 있도록 여쭙되, 주민이 무엇을, 왜 원하시는지(필요)를 먼저 여쭙는 겁니다. 추상적으로라도 그렇게 원하시는 바를 말씀해 주시면, 이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활동 거리(대안 욕구)를 몇 개 구체화해서 제안하는 정도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때 중요한 건 제안하는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겁니다. 사회사업가는 제안만 하되, 결정은 주민들께서 하시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중년 남성 한 분이 모임 때 이렇게 제안하셨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면 봉사활동(표현한 욕구)처럼 의미 있는 일(필요)로 시작하자. 다른 분들도 좋다며 어떤 봉사활동이 있는지 사회사업가에게 소개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회사업가는 복지관 안에서 하는 봉사보다, 가까운 산을 오르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대안 욕구)은 어떠신지 여쭈었습니다. 주민들은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다음에는 산 앞에 있는 역에서 만나자고, 낮에는 더우니 아침 11시에 만나자며 주민들께서 직접 결정하셨습니다. 주민은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말씀하셨고, 사회사업가는 그 필요를 이루는 대안 욕구를 제안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무엇을 할지, 어디서 언제 만날지 등은 주민이 직접 결정하시도록 도운 겁니다.
내가 결정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내 모임이도록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사업가가 무엇이 필요한지 주민과 의논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다 보면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구체화됩니다. 필요한 준비물이 뭔지 알게 되면 주민은 자연스럽게 나한테 뭐가 있는지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주민 각자 가지고 있는 걸로 역할 나눠 준비하게 돕습니다. 먼저 주민이 역할을 나눈 후 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때 그만큼만 사회사업가가 거듭니다.
이때 중요한 건 사회사업가가 기관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밝히지 않는 겁니다. 보통 복지기관에는 온갖 물품이 거의 다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임도 행사도 많이 했기 때문에 없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사업가가 기관에 뭐가 있는지를 먼저 밝히면, 주민은 자기 것을 꺼내려 하지 않습니다. 내 것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또 가정용이기 때문에 기관 것이 훨씬 더 공용에 맞을 거라고 여기는 거죠.
이렇게 활동 거리부터 준비물 등까지 하나하나 주민이 결정하도록 도와야 비로소 주민이 그 모임의 주인이 됩니다. 더 많이 결정하면 할수록 그만큼 모임을 챙기는 사람도 주민이 됩니다. 내가 결정했으니 준비도 진행도 책임을 갖고 더 맡는 겁니다. 또한 그럴수록 불만도 줄어듭니다. 내가 결정하고 준비하고 진행한 내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민이 모임의 주인이 되도록 사회사업가는 거들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