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구조 바꾸기] 불리한 구조에서 관계할 때는 ‘안전한 만남’을 설계해야

모든 만남이 효과적인 건 아니야

한 연구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 여성 대학생이 흑인 여성과 만나도록 한 후 흑인에 대한 태도와 신뢰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실험을 위해 백인 여성을 세 집단으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백인 여성이 흑인 여성과 직접 대화한 집단(직접 만남), 백인 여성 친구가 흑인 여성과 대화하는 장면을 지켜본 집단(간접 만남), 아무 만남도 없는 통제 집단.

흑인 여성에 대한 백인 여성의 태도와 신뢰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직접 만남이든 간접 만남이든 흑인 여성(외집단)에 대한 태도가 좋아졌습니다. 다만 신뢰는 태도보다 변화가 더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도는 한 번의 긍정적 경험으로도 바뀔 수 있지만, 신뢰는 반복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 결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불리한 구조 속에서 모든 만남이 다 효과적인 게 아닐 뿐 아니라 심지어 불리한 구조를 더 고착시킬 위험이 크다는 점입니다. 특히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이 강하고, 두 집단 간 권력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는 직접 만남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기 쉽다는 건 이미 여러 논문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연구에서는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아무렇게나 만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조건을 아주 정교하게 미리 설계했습니다.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말입니다.

관계가 항상 약이 되지는 않아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돕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으로 나뉘어 당사자에게 불리한 구조, 사회사업가와 대상자로 만나 당사자에게 불리한 구조,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으로 만나 일방적으로 피평가자에게 불리한 구조. 이런 불리한 구조에서 만나는 관계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위계가 분명합니다.

이렇게 위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내집단과 외집단 즉 우리는 너희랑 다르다는 인식마저 선명하면, 이런 상황에서의 만남은 인간으로 존중받는 경험이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불리한 구조에 따른 불평등을 다시 확인하는 경험이 되기 쉽습니다. 특히 권력이 약해 불리한 구조에 처한 집단에게는 위축, 침묵, 문제의식 상실 같은 반응으로 오히려 불리한 구조에 순응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럴수록 불리한 구조는 더 견고해지고 고착되는 악순환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관계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는 언제든지 해로울 수 있다’는 경고를 계속 제기했습니다. 이 연구 또한 이 위험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주 강력한 안전장치를 갖추고 만나도록 실험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Antonin Duallia

첫 번째 안전장치: 대화의 내용은 ‘자기 이야기’여야

이 연구에서는 직접 만날 때 아무 주제나 꺼내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이 제공한 구조화된 주제에 따라 대화하도록 이야기 주제를 통제했습니다. 이때 주제는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였습니다. 자기 삶, 기억 같은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 거죠.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험을 먼저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정치, 차별, 사회적 지위 같은 무거우면서 첨예한 구조적인 주제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즉, 권력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대화의 중심에 오르지 않도록 한 겁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이는 상대를 ‘나와 다른 집단의 대표’가 아닌, 그냥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흑인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냥 나와 같은 한 인간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왜냐하면, 태도를 바꾸는 출발점은 구조 비판이 아니라 인간적 만남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안전장치: 지위는 반드시 평등해야

두 번째 안전장치는 지위의 평등입니다. 연구진은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우는 불평등한 구조가 되지 않도록 구조화했습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를 위해 같은 또래, 같은 실험 참가자, 같은 입장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나누도록 통제했습니다.

이렇게 평등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직접 만남이 흑인(외집단)을 위축시키지 않았고, 백인과 흑인 모두 서로 태도가 부드러워지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연구 결과는 명확합니다. 모든 관계가 유익한 게 아니므로, 안전한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에서 관계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계가 무조건 유익하거나 선한 게 아닙니다. 안전장치가 없는 만남과 관계는 언제든지 약자를 해치거나 불리한 구조를 더 고착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사업가는 권력 차이가 분명한 사회일수록, 인간적 태도가 먼저 회복되도록 관계의 조건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게 필요합니다. 특히 연구에 따르면, 내집단·외집단 구분이 강한 사회일수록 직접 만남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사업가는 약자가 다른 관계자와 만날 때, 인간적 만남이 되도록, 서로 평등한 만남이 되도록 조건을 잘 구성하면 좋겠습니다.

참고: Swart, H., Lolliot, S., Berry, G. T., Strydom, S., & Hewstone, M. (2026). Experimental Evidence for the Secondary Transfer Effect: An Investigation of Direct and Vicarious Contact in the Laboratory. Journal of Community & Applied Social Psychology, 36:e70211. https://doi.org/10.1002/casp.7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