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용실이 당사자를 환대할 필요는 없다: 지역사회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허상
지역사회가 준비 안 됐다는 말의 함정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에는 지역사회가 아직 준비 안 됐어요.” 자주 듣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에는 묘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마치 지역사회 주민 모두가 장애인을 환대해야만 비로소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다는 전제예요.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고, 또 당연히 지향해야 하는 바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말이어도 과연 그런가 하며 비판적으로 따져보아야 합니다. 특히 그럴듯하게 보이는 문장일수록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향해야 하는 바이면서 거꾸로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 주민 모두가 장애인을 환대해야만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영원히 준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양보해서 주민 95%가 장애인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날이 올까요? 더 양보해서 주민 80%가 환대하는 날이 올까요? 단기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어떤 가게는 매출 때문에 당사자가 오는 걸 꺼릴 수 있고, 어떤 곳은 윤리성이 없어서 그냥 거절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추상적 기준을 목표로 잡으면 결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캠페인을 하고, 교육하고, 홍보하지만, 전체 인식이 바뀌어야만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벽을 치면서, 정작 지금 당장 필요한 연결은 못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전체 또는 대다수가 모두 환대해야만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 관계자와 교류하며 살 수 있는 걸까요?
소수만 있어도 돼
대한민국 장애인은 전인구의 약 5%입니다. (2024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 대비 5.1%) 그럼 95% 비장애인이 준비되어야 동네 미용실에 마음 편하게 보통 손님으로 갈 수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지역사회에는 장애가 있건 없건 그냥 손님으로 보고 환대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사람 중에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가게 사장님도 분명 있습니다. 전체는 아니지만 반드시 있습니다.
장애인이 한 명이 있고, 누구든 환대하는 미용실이 한 곳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동네 미용실 전체는 모르겠지만 한 군데라도 당사자를 장애가 있건 없건 보통 손님으로 환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용할 때 동네 미용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복지관에서 미용 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이렇게 당사자가 필요로 하는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가 동네에 영역별로 한 군데씩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당사자는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만해집니다. 굳이 환대하지 않는 가게를 찾아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원래 한 군데 정해 놓고 다녀
사실 우리네 삶이 이렇습니다. 혹시 미용할 때는 동네에 존재하는 모든 미용실을 다 이용할 수 있어야, 모든 미용실이 친절해야 미용할 수 있나요. 아니면 내 맘에 맞는 미용실 한 군데를 주로 이용하나요. 가봤는데 불친절하면 다신 가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갑니다. 그렇게 마음 맞는 곳이 한 군데만 있으면 동네에서 대체로 미용 서비스 이용하며 살아갈 겁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왜 장애인 당사자는 지역사회 전체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나와 다른 존재로 보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전체가 다 환대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전체 지역사회 주민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지금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필요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지역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가 아니라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관계가 무엇일까 하며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해볼 만 해집니다.
출발점을 다르게 하면 해 볼만 해져
지역사회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당사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찾는 것, 그렇게만 생각해도 해 볼만 해집니다. “지역사회 전체가 변해야 한다”에서 “딱 한 곳만 있으면 된다”로 관점을 바꾸면, 사회사업가의 눈앞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회사업가의 역할은 더불어 살려는 마음이 있는 지역사회 사람을 찾아서, 당사자와 연결하는 겁니다. 지역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꾸려는 것도 당연히 추구하지만, 모든 사안을 이렇게 풀어내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한 사람과 한 사람을 이어가는 것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전체 장애인이 약 5%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역사회 전체 인구 중 당사자를 환대하는 주민이 소수라 하더라도 당사자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추상에서 구체로, 전체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바꿀 때, 비로소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사회사업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지역사회가 준비 안 됐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준비된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으러 나가보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