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미션 비전 체계를 들여오다 복지기관이 빠뜨린 당사자와 사회

기업에서 들어온 미션 비전 체계

복지기관이 지금 사용하는 미션 비전 체계는 기업에서 수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기업이 사용하는 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의 미션 비전 체계는 위계를 갖습니다. 최상단에 미션, 그 아래 비전, 그 아래 전략, 인재상 등이 자리합니다.

미션 → 비전 → 전략 → 인재상

사회사업가가 흔히 갖는 오해 중 하나는 기업은 으레 돈만 추구하는 곳이라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실상은 다릅니다. 물론 많은 기업이 수익에 큰 관심을 두고 그걸 전면에 내세우는 곳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 중에는 세상의 어떤 문제를 풀어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사명을 세운 기업도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의 미션은 “세상의 정보를 체계화해 누구나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이고, 테슬라의 미션은 “세계의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입니다. 영리 기업이지만, 미션 자체는 지극히 영리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죠.

미션이 정해지면, 비전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향후 몇 년 안에 기업 스스로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지를 밝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정합적으로 설정하고, 이 전략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직원상을 인재상으로 설정하는 흐름입니다. 즉, 기업이 스스로 사명을 설정한 후 그 사명에 따라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전략과 인재상을 논리적으로 정렬하는 데, 이것이 바로 기업의 미션 비전 체계입니다.

비영리에도 꼭 들어맞을까

기업의 미션 비전 체계를 보면, 논리적으로 정합적입니다. 그러니 비영리인 복지기관에도 잘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초기 복지기관에 미션 비전 체계를 도입할 때, 경영학과 교수님이 적극 참여하여 경영학 분야에서 통용되던 체계를 거의 그대로 현장에 들여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특히 앞에서 살펴보았듯 기업의 사명을 보면 비영리에도 충분히 적합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비전부터 어긋납니다. 기업의 비전을 보면 주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둡니다. 물론 일부 기업은 비전을 사회 변화로 설정하기도 합니다만, 대다수 기업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 되겠다”거나 “10년 안에 매출 100조 달성”같이, 향후 몇 년 후에 기업이 어떻게 되고자 하는지로 비전을 설정합니다. 즉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가고자 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비전을 설정하는 거죠.

비전이 자기 자신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전략 또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중점을 둔 방법으로 설정하게 됩니다. 인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전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에 관심을 두었으니, 당연히 인재 또한 직원으로 상정됩니다. 기업의 인재상하면 곧 직원상을 의미합니다. “도전하는 인재”, “혁신하는 인재”, “글로벌 인재”같이 말이죠. 모두 직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리킵니다. 과연 이런 흐름이 복지기관에도 딱 들어맞는다 할 수 있을까요?

©️Chanhee Lee

복지기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같은 비영리지만 조금 다른 교육기관을 보겠습니다. 교육기관도 인재상을 설정합니다. 그런데 교육기관에서 말하는 인재상이란 직원상인가요? 교직원의 이상적인 모습이든가요? 아닙니다. 교육기관의 인재상이란, 교육기관의 존재 목적인 바로 학생, 그 학생이 어떤 인재가 되도록 할 것인가, 말 그대로 학생의 인재상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대학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글로벌 인재 양성”을 인재상으로 내건다면, 이는 교수와 직원이 그렇게 되겠다는 게 아니라 학생을 그렇게 길러내겠다는 약속입니다.

왜 이렇게 설정할까요? 교육기관은 왜 존재할까요? 교육기관 자체가 잘되기를 바라는 걸까요, 아니면 인재를 기르는 것 자체가 교육기관의 존재 목적일까요? 비영리기관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되느냐보다 대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대상이 명확한 거죠. 물론 안 그런 곳도 많으나 그래서 비판받습니다. 교육기관답지 않다고요.

올바른 교육기관은 인재상을 학생의 인재상으로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나머지 가치체계를 다 정렬합니다. 대상의 이상적 모습이 가치 상단에 있어야, 이를 위해 나머지 가치가 정렬되고, 이럴 때 비로소 목적과 수단이 구분됩니다.

이제 다시 복지기관을 봅시다. 복지기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요? 복지기관 자체가 목적일까요, 아니면 당사자와 사회라는 주 대상이 있는 걸까요? 당사자와 사회가 없어도 복지기관은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당사자와 사회가 있어 비로소 복지기관이 존재합니다.

무엇을 최상단 가치로 두어야 하는가

복지기관은 무엇으로 정렬해야 할까요. 무엇을 최상단 가치에 두어야 할까요. 복지기관이 유명해지는 것, 탄탄해지는 것, 대표기관이 되는 것 따위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걸 설정하는 곳도 있을 수 있으나 그럴수록 복지기관답다는 평가는 받지 못할 겁니다. 수단을 목적으로 뒤바꾼 셈이니까요.

무엇이 최상단 가치인가요. 바로 당사자와 사회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당사자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 사회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그 가치가 가장 위에 있어야 합니다. 이 가치를 이루기 위해 나머지 가치를 수단 삼아 정렬해야 비로소 목적과 수단이 구분됩니다.

그런데 기업의 체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비전 자리에 복지기관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되겠다는 모습을 상정합니다. 전략은 복지기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이르도록 설계합니다. 인재상은 직원이 어떠해야 하는지로 채웁니다. 그러는 사이 정작 당사자와 사회의 궁극적 모습은 두루뭉술합니다. 선명하지 않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추상적으로 적어놓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장식처럼 작성하여 슬그머니 배경으로 미뤄둡니다. 전형적으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겁니다. 복지기관 자체가 잘 되는 것이 목적으로 자리 잡고, 당사자와 사회는 그 목적을 위한 명분으로 밀려납니다.

이것이 지금 많은 복지기관이 미션 비전 체계를 갖고 있음에도, 정작 평상시 사업과 운영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강력한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나아가 뜻있는 사회사업가가 이곳에서 왜 일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잃게 만드는 배경이라 봅니다. 미션 비전 자체가 본래 수단이어야 할 복지기관 자신, 혹은 기관장의 욕망을 충족하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당사자와 사회를 위한 실천이 그 체계 안에서 힘을 얻기 힘들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가 어려운 겁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업의 미션 비전 체계는 과연 복지기관에도 딱 들어맞는가. 들여오면서 복지기관이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가치를 빠뜨린 건 아닌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사명까지는 비슷할 수 있어도, 비전 이하에서는 어긋난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미션 비전 체계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복지기관이라면 복지기관답게 복지기관에 맞게 적용해야 효과적일 겁니다. 무턱대고 그냥 적용해서는 효과는 고사하고 부작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원래 벤치마킹은 본질을 가져와야지 껍데기만 가져오면 이익은 적고 부작용만 커질 뿐입니다.